후회하지 않는다
후회하지 않는다@yamyamcm
나는 인어예요.
어쩌면 죽음일 수도 있겠죠. 그게 아니라면 설인이라고나 할까요. 왜, 눈보라가 치는 날이면 나온다는 괴물 말예요……. 푸른 핏줄이 비치고 눈엔 핏발이 서서 슬퍼 보이는 놈. 머리는 산발일 테죠? 네? 아무튼 나는…… 난 그런 거예요… 그런 존재라구요.
랴오위는 고개를 숙였다. 바닥에 누운 서월의 시선은 허공을 더듬고 있었다. 그의 눈꺼풀이 유난히 투명해 보였다. “그런 말은 마.” 랴오위가 할 수 있는 대답은 고작 그뿐이었다. 서월의 옆구리에서는 검붉은 핏물이 끊임없이 쏟아지고 있었다. “나 대신 당신이 이렇게 되었다면 좋았을 텐데.” 서월이 말했다. 맞는 말이었다. 그랬더라면 훨씬 나았을 것이다. 적어도 서월은 랴오위처럼 어쩔 줄 모르고 굳어 서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랴오위는 바닥에 무릎을 대고 앉았다. 서월의 피가 식어 무릎을 차갑게 적셨다. “말하지 말라니까.” 종아리까지 전부 젖자 랴오위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서월이 입술을 우그러뜨렸다. 그의 안대가 더 짙은 색으로, 중앙부터 젖어 들어갔다. 안타까운 광경이었다. 서월은 여전히 허공을 보고 있었다. 차가울 것이 분명한 그의 손가락은 바닥에 힘없이 늘어진 채였다. 랴오위는 그 손이 자신의 손목과 손을 어루만졌던 때를 기억했다. 손이 왜 이렇게 차가워요? 그렇지 않을 것처럼 생겨서는…. 서월은 웃고 있었다. 그런 것과 그렇지 않은 것. 랴오위는 그것을 구분하지 못했다. 서월의 말은 늘 랴오위에게 어려웠다. 그가 보는 자신은 마치 먼 나라에서도 가장 낯선 이방인처럼 느껴지고는 했다.
하지만, 하고 서월이 다시 입을 열었다. 랴오위는 손끝으로만 그의 입술을 다물려 주었다. 그때에서야 서월의 반쪽짜리 눈이 랴오위를 향했다. 문득 랴오위는 이 눈맞춤이 참으로 오랜만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서월이 몸을 아직 날래게 움직일 수 있었던 때가 떠올랐다. 지난겨울이었다. 서월은 눈보라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랴오위가 잡을 새도 없이. “만일 내가 보고 싶어지면…….” 무참히 흩날리는 눈발 속에서 속삭이다가 영영 멀어졌다.
그리고 오늘이 왔다.
랴오위는 서월을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어제 사람을 죽여서, 혹은 내일 사람을 죽일 수도 있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날이면 어김없이 서월과 함께였으니 그 빈자리가 톡톡했다. 랴오위는 눈이 오는 것을 보고 바람결에 맞추어 걸었다…… 쉬지 않고. 잠시도 쉬지 않고. 사위가 온통 희고 밝았으나 도무지 낮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시간이었다. 시간과 시간 사이의 공백을 한참 거니는 듯했다. 그러다 정신을 차리니 서월의 곁이었다. 아니, 서월의 앞이었다. 아니…… 서월의 위였다. 랴오위는 서월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째서 이렇게 된 것이냐고는 묻지 않았다. 누구나 이렇게 될 수 있는 시대였기 때문이었다. 다만 랴오위는 서월을 곁에 두었더라면, 혹은 서월을 따라 그 눈보라를 향해 나아갔더라면 오늘을 맞이하지는 않았을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후회가 아니었다. 치밀하고 슬픈 계산으로 도출한 일종의 변명이었다.
서월의 숨이 가늘어지기 시작했다. 그의 얼굴에 내려앉은 눈이 좀처럼 녹지 않았다. 몸이 몹시 차갑다는 증거였다. “내가 뭐인 것 같아요…?” 당신이 생각하기에, 하고 서월이 한참 숨을 골랐다. 랴오위는 입안을 돌아다니는 무수한 단어 중 어떤 것도 쉽사리 꺼내 들지 못했다.
눈이 다시 내리기 시작했다. “내가…….” 서월은 랴오위를 끈질기게 보고 있었다. 그것이 이 차가운 생의 바닥에 그를 붙들어 놓는 마지막 닻이었다. 랴오위는 그의 입술에서 손가락을 미끄러뜨렸다. 차가운 턱과 차가운 목과 차가운 가슴. 마치 검을 만지는 것 같았다.
바람이 불었다. 눈이 내리고 흰 착시, 무엇도 아닌 어느 때도 아닌 듯한 순간이 휘몰아쳤다. 몇 번이고 그랬다. 랴오위는 무릎 밑에서 피가 얼어가는 소리를 들었다. 바람의 비명이 서서히 물러갈 때쯤 시야가 정위를 찾았다…… 천천히.
“글쎄.” 랴오위가 말했다.
참으로 형편없는 목소리였다. 성대가 얼어붙어 발성하는 것만으로도 무언가 부서진 듯했다. 랴오위는 목으로 넘어오는 비릿한 피의 공격성을 삼켰다. 손바닥 아래 푸르게 얼어붙은 서월은 웃고 있었다.
랴오위는 그 표정을 알았다.
“무엇이었어야 했는지.” 랴오위가 고개를 숙였다. 손끝의 차가움이 아랫입술에도 맺혔다. “조금만 더 시간이 있었으면 했어.”
숨이 느껴지지 않았다. 인어라면 응당 그럴 것이었다. 죽음이라면 그리할 것이고 설인이라면야 당연했다. 랴오위는 눈 결정을 머금었다. 녹지 않았다.
“그러면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것은 역시 후회가 아니었다. 랴오위는 그럴 수 없었다. 이제 와서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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